▒   두번째 시집   ▒  

이름: 사공
2008/2/25(월)
발문(서평) - 서정윤  

 시적 몽상의 긍정적 세계관

                                                                                                          -서정윤(시인)

 

  시는 자유시이든 정형시이든 산문시라고 하더라도 그 나름대로의 리듬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그 시들을 읽을 때 리듬을 타고 흥얼거릴 수 있는 것은 어떤 의미로든 음악성을 지닌다는 말이 될 것이다.

  주요한이 “불노리”를 쓰고 창조에 발표하면서 “이로써 우리 시는 음악으로부터 완전히 분리하여 독립하게 되었다.”라고 주장하였지만 시가 언어예술인 이상 언어자체에 있는 리듬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것이 또한 사실이다.

  시라는 것은 원시시대부터 노래로 불리어지던 것이다. 신라시대의 향가나 고려 때의 속요, 조선의 시조나 가사 등 시가의 형태를 지니던 것은 모두 노래로 불리어졌다 할 수 있다. 이것이 자유시가 나오면서 음악에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가고는 있지만 또한 많은 뜻있는 분들에 의해 다시 합하여지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1987년 소년한국일보의 김수남 사장이 시낭송 전국투어를 시작한 것이 오늘날 시낭송 협회가 생기고 시낭송가 라는 직함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서 활동하게 된 시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전국에 시낭송가들이 생겨나고 어떻게 하면 시를 바르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전달할까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또 그들은 낭송에 알맞은 시들을 찾게 되기까지 한다. 지금까지의 이미지중심의 난해한 시들은 그들 나름의 길을 걸었으며 또 낭송에 좋은 시들은 그들끼리의 길을 걷는, 이런 현상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김춘경 시인의 시는 시가 가진 현란한 기교 보다는 낭송으로 전달되어지는 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우선 그의 시를 한편 보자.


하늘이 눈을 감았다

폭신한 구름 위에 누운

바람처럼 가벼운 춤사위의

완벽한 정사情事를 위해


빛을 뒤로 한 사랑은

꽃보다 처절한 아름다움인가

기쁨의 구역을 가늠하는

분주한 마음의 산책..


어두운 지상의 등불처럼

환하게, 환하게 밝아온다.

순간 터지는 봇물은

꿈꾸는 하늘의 기쁜 눈물


온종일 비가 내린다

푸른 숲을 적시는 단비

하늘은, 사랑을 하는

하늘은 꿈을 꾸고 있다.

                       -<사랑의 단비, 전문>


  우선 이 시는 눈으로 내가 직접 읽는 것으로도 그 맛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눈을 감고 다른 사람이 낭송해주는 것을 편안한 마음으로 들으면서 음미하는 것으로 충분히 그 의미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낭송으로 느끼는 시가 곧 김춘경의 시 인 것이다.


  김춘경 시인의 시에서는 인간이 가지는 원초적 그리움이 배어있다. 이 그리움은 인간적인 그 어떤 것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심연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인간 본연의 원초적인 것이다.


긴 방랑 끝에 돌아온

바람의 숨결에

따스한 햇살 호흡을 고르고

머물던 자리 다독이면

어느새 파도가 일렁인다


사랑아 

봄볕보다 따사로운 사랑아

수평선 출렁이는 봄바람 불면

작고 투명한 창을 넘어

그리움의 바다로 가자

                      -봄바람이 불면, 부분


  그의 시 어디를 펼쳐도 선혈처럼 뚝뚝 흐르는 것이 바로 그리움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그 그리움의 대상이 구체적으로 밝혀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대상인가 싶어 살펴보면 딱히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고 또 그렇다고 어떤 종교적 신으로 모시는 것인가 해서 살펴보아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하늘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지나가는 바람의 모습이기도 하다가 또 어느새 다시 보면 서쪽하늘 붉게 물들이며 타오르는 노을의 모습을 하고 서있다. 그대 가슴 싸한 그리움이라고 나도 그 그리움에 젖어 볼라치면 어느새 붉은 노을빛은 산들 틈에 조금 고여 있다가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리고는 없다. 어둠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림자조차 어둠 속에서는 나를 배신하고 사라져 버린다.


  다음으로 김춘경 시인에게서 찾은 것은 슬픔이다.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아픔과 시간의 긴 여행을 하는 삶의 여행자로서 하나하나 잃어가는 상실의 아픔, 또한 거기에서 오는 눈물의 흐름 속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찾고 있는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 바라볼 수 없는 슬픔

산이 작아져 오를 수 없는 아픔

강이 멀어져 건널 수 없는 상실


아, 가슴을 적시며

두 볼을 차고 흐르는 진한 눈물

                                  -빗물, 전문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매번 배우고 매번 얻는다지만 또한 하루하루를 지나며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애정을 시인은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아픔마저도 안녕 / 잘 가시게 / 내 사랑 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시인의 그 고통은 어느 정도 숙성된 것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사랑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수평선을 집어 삼킨 안개

흐린 하늘과 바다를 껴안으면

송알송알 맺히는 물방울은

머리카락 사이에 집을 짓고

알알이 젖은 모래 위엔

이내 허물어질 모래성처럼

지워져 버릴 글자들이 새겨진다<중략>


비가 오면

물안개 가득한 바다는 달려와 처음처럼 하얀 사랑을 한다

                                                      -안개꽃바다, 부분


당신을 만나는 순간/ 가슴엔 이미 수많은 시집에 꽂혀/ 저마다 노래를 부르고 / 예기치 못했던 순간의 꿈은/ 혼절한 시가 되어/ 또다시 시집에 담깁니다// 사랑하는 그대/ 오늘도 당신을 생각하는 동안/ 그리움은 무장무장 커져/ 낙엽 되어 산처럼 쌓입니다 (오늘도 당신을, 부분)

  우리가 문학 청년시절 가장 쓰기 어려운 단어가 몇 개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사랑이다. 사랑이라든가, 소녀, 혹은 여인, 또 그리움. 뭐 이런 단어를 쓰면 같은 문학을 하는 친구에게 호된 질책을 받는다.

  시에 쓰기 적절한 단어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만큼 추상화가 되어 구체화가 필요한 시에는 쓸 수없는 단어라는 말이다. 사랑이라면 그 사랑을,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 있도록 하라고 훈련 받는다. 그런 관념화된 단어들은 시에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학 수업을 지금까지 오랜 기간 해왔고 또 시집을 두 권씩이나 낸 기성 시인이 그런 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고 봤을 때 김춘경 시인은 오히려 그것을 관념화, 추상화를 의도적으로 즐긴 것이 아닌가한다. 그것은 시낭송을 하고 있는 시인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사료된다. 사랑의 대상 앞에 한없이 작아지고, 또 어린아이가 되어 애교라도 부리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한편 그의 시들을 읽노라면 그리움에서는 희미한 안개 속에 갇혀있던 그 대상들이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좀 더 구체성을 띄고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바위를 뚫고 나온 풀 한 포기의

강한 집착 같은 노력인지도 모릅니다

기다림의 고통을 감내하는

긴 시간을 동반한 채로 말입니다

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건너야 할 강이 있다면

강의 깊이를 재지 말고

강의 길이를 묻지 말고

그대로 유유히 건너야 하듯이

누구를 사랑하기 위해선

누군가를 묻지 않고

누구이기를 원하지 않은 채

그냥 그대로 가슴을 데우며

마음을 껴안아야 하는 일인가 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창과 방패의 조화처럼

그대로 어이없는 모순입니다

위험한 게임의 법칙인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전문


  그는 우선 내 삶을 바르게 하고나서 신 앞에 아주 조심스럽게 서기를 원하는, 종교적으로 본다면 아주 겸손한 생활인이다. 성경책을 가슴에 끼고 믿지 않는 자에게 회개하라고 고함을 치는 광신도 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은 것을 힘들어하는 이웃의 부엌에 몰래 넣어주는, 그러면서도 이름을 밝히지 않는 진정으로 따스한 마음의 소유자 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신의 창조물로 보고 또 그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즐거움과 희망을 느낀다.


바람이 말한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날도

잔잔한 강물의 은빛물결은 흔들려

빛 고운 파장으로 밀려온다고


화려한 어느 봄날의 소나타로

거친 파도처럼 다가온다 한들

가로 막을 수 있으랴


그 사랑이 천지를 뒤흔들면

바람은 되물으리라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에는

어떤 통로가 있는지

어디로 달아날 수 있었는지를


바람은 전한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날에도

생의 아름다움은 차올라

끝없는 욕망의 언덕아래 구르고

꽃들은 이미 피어 흔들리고 있다고

                                 -바람이 전하는 말, 전문


이쯤에서 생의 반편을 내버린 채로/ 저무는 저녁강의 아름다움을/ 강바닥까지 붉게 타오르기 전에/ 말해주고 싶다 // 아무 많이 사랑스럽다고/ 그래서 더 사랑하고 싶다고 (저녁 강이 저물기 전에, 부분)

  이런 시편들에서 보이는 것은 삶의 긍정적 수용, 그리고 그것들의 시적표출이다. 김춘경의 시들에는 찌들은 삶의 고통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긍정적 세계관은 그것을 읽는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준다. 우리 삶은 얼마든지 사랑스럽고,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가장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나눠줄 수 있는 따스한 사랑이 있다는 말이다. 그만큼 자신의 가슴속에서 사랑이 넘친다는 말이다. 자신도 완전히 채우지 못하면서 남에게 나눠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김춘경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참 가슴이 따스한 시인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따스함은 그의 시 곳곳에 나타나 있다. 또한 시낭송을 함께하는 그의 모습에서도 나타나 있다.

 이제는 시를 낭송의 차원과 언어예술 차원 사이에서 어떻게 줄다리기를 잘해서 시의 품격을 더욱 상승시킬 수 있는가, 또한 그런 시를 쓸 것인가 하는 점이 앞으로 김춘경 시인이 안고 가야할 과제가 될 것이다. 김춘경 시인의 건필을 빌어본다.

 

 

 

♪..그리운의 변주 - 詩, 낭송: 김춘경


  이름   메일   관리자권한임
  내용 입력창 크게
                    수정/삭제     다음글    
번호제 목이름작성일조회
     => 공지 --- 시집 [사랑을 묻는 그대에게] 소개 영상
     => 공지 --- 2시집 [사랑을 묻는 그대에게 ] - 표지와 목차
     => 공지 --- 발문(서평) - 서정윤
79   <후기> & <프로필> 사공 2008-02-26  2247
78   Prologue Poem - 사랑을 묻는 그대에게 사공 2008-02-26  2026
77   1부 (春) - 봄바람 불면 사공 2008-02-26  1571
76   내 안에 피어나는 봄 사공 2008-02-26  1689
75   봄 향기 취하는 사유(事由) 사공 2008-02-26  1489
74   봄은 어디쯤에 사공 2008-02-26  1619
73   일장춘몽(一場春夢) 사공 2008-02-26  1561
72   사랑이어라 사공 2008-02-26  1625
71   춘풍(春風)에 돛달고 사공 2008-02-26  1541
70   목련꽃 같은 사랑 사공 2008-02-26  1744

 
다음       목록 쓰기

ⓒ Copyright 1999~   TECHNOTE-TOP / TECHNOTE.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