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시집  ▒  

이름: 김춘경
2005/11/11(금)
서평 - 박동규  


사랑법과 지나간 것에 관한 그리움의 조각들

                                                                       박 동 규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사공 김춘경 시인의 서평을 부탁받고 시집원고를 받아보니 첫장에 김춘경 시인이 나와 만났던 사연이 있었다.  
 작년 이맘때쯤 마포회관에서 동서문학상 수상식이 있었고, 나는 1부에서 잠시 문학강연을 하고 김 시인은 2부에서 시 낭송을 하였으며, 그때 막 뒤에서 잠시 인사를 주고받았다는 인연이었다. 나는 글을 읽고 한참 동안 머릿속에서 김 시인을 그려보았으나 너무나 짧은 순간이었기에 확연하게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면서 기억에 희미하게 윤곽만 잡혀지는 김 시인이기에 그의 시가 가지는 향기와 생명은 어떤 것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이 호기심은 그의 시를 마치 사람에 따라 지니고 있는 독특한 버릇을 찾아내어 그의 인상을 만들어보려고 하는 것처럼 그렇게 편안한 탐색의 눈을 가지게 하는 것이었다.
 이는 김춘경 시인의 시가 지니고 있는 밀도라든가 구조의 시적 형상성에 관한 관심보다는 김 시인이 어떻게 사물을 바라보고 이를 그의 시적 공간 안에 수용하고 시로 드러내어 그만의 개성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하는 일종의 시적 작업과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의 시와 만나는 나의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 김춘경 시인의 사랑이야기 *

 그의 시집은 5부로 분장되어 있는데, 이 나눔에서 1부 ‘그대가 내게로 오기까지’ 2부 ‘흐린 오후에는 너에게로 가고 싶다’ 4부 ‘삶이 아름다운 것은 당신이 있기 때문입니다’는 거의 절반이상을 차비하는 비중에 사랑이 잠복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김 시인이 그의 시집 절반이상을 사랑이라는 문제를 시적 대상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먼저 그의 시집 첫장에 실린 ‘아름다운 만남’은 사랑에 관한 그의 선언적 암시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만남은 헤어짐의 씨를 뿌리고
 이별은 기다림의 꽃을 피운다
 서로 바라본다는 것은
 함께 그리워 하는 줄기가 되는 일

 만나고 싶을 때 만나고
 돌아서서 그리워 하는 것은
 조석으로 물드는 강가에
 한 송이 꽃을 심는 일이 아닌가

 고독한 향기를 품은
 미미한 사랑을 거두기 위해
 조용히 마음의 강가를  배회함은
우리 아름다운 만남의 시작이리라

 전문을 인용하였다  이 시에서 그가 드러내고 있는 사랑의 형상은 만남과 이별의 축을 통해서 빚어지는 여러 갈래의 색깔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그가 사랑의 세계로 가는 길로 설정한 ‘아름다운 만남’이라는 표지판을 만나게 되기까지 어떤 마음의 행로를 걸어가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  만남의 인연이 ‘서로를 바라보고’ ‘한 송이 꽃을 심고’하는 형상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사랑은 다음 시에서도 같은 흐름을  찾아볼 수 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 더 이상 자랄수 없는 그리움의 키만큼 /이미 당신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 어설픈  까닭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더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사슬에 /휘감겨 당신이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 아름다운 이유가 있을 뿐입니다/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만큼 / 무작정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기다리는 까닭’의 전문이다
 이 시에서 나와 당신의 관계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자아와 타자의 관계라기보다는 자아와 타자가 혼유된 일체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마치 ‘나안의 나’처럼 미워할 수는 있어도 벗어날 수는 없고 떠난다고 해도 떠날 수 없이 언제나 나 안에 지니고 가야 하는 그런 나의 다른 분신과 같이 자아와 타자의 관계를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유라는 이성적 논리에 의해 나와 당신의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성적 열정에 의해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이는 김 시인이 밝히고 있는 이별이나 그리움이 사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일으키는 작은 반란의 몸짓에 지나지 않음을 암시하는 것이 된다. 이와 같이 김 시인은 나를 벗어나 당신에게로 향하는 도약의 힘은 사랑이라는 발판을 기초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 한 가지 김 시인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엮은 ‘사랑하는 사람아’라는 시를 보자.


    문득 인생의 무게가
    무겁다고 느껴지는 날이면
    우리 함께 바다로 가자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말고
    짠 물에 벗어 던지자
    (중략)
    사랑하는 사람아
    설령 반쪽만 마른다 해도
    슬퍼하지 말지어다
    어설픈 생의 절반은 언제나
    그 바다에 있으리니

 시인은 그가 바라는 이상적 상상의 꽃은 합일이라는 형식보다는 절반이라는 조화를 꿈꾸고 있다.
 이 시에서 보듯이 같이 구원의 영역인 바다에서도 절반의 마름을 갈구하면서 바다에 함께 있다는 충족으로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서 주목해 볼 점은 시인이 바다라는 공유의 터전과 구원의 연못으로 삶의 전체적 수용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다의 이미지를 선택함에 있어서 어린아이가 와서 건드려도 받아주고 큰 배가 지나가며 할퀴어도 할퀴어주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복원력과 원형에 관한 본질을 가지고 있는 프로스트적인 의미를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프로스트적 이미지는 시인이 바다라는 형상을 받아들이는 인식의 방식이 본원(本原)과 바다를 병치시키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따라서 시인은 슬픔도 기쁨도 사랑이라는 틀 안에서 용해되어 모든 삶의 의미를 통괄하는 정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이별과 만남의 축은 사랑이라는 중심에서 낮과 밤처럼 교차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는 결국 하나의 뿌리에서 연유함을 말해주며 시인의 사랑이야기는 나와 사랑하는 이가 독립된 삶의 자리에서 바라보는 형태가 아니라 서로 의존적 조화로 안과 밖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김 시인의 가을이야기 *

 시인의 감성을 살아나게 하는 사물 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역시 자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자연은 때로는 자연이 드러내고 있는 모습에서 삶의 있는 진실을 찾아내는 방법과 자연의 변화가 주는 유동에서 무엇이 이 세상에 있어야 할 것인가를 찾아내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김 시인은 가을과 겨울이 주는 연상에 관심을 지니고 있다.

(a)가을은
  집으로 가는 길목에
  떨어지는 가로수의 낙엽이 아니라
  우리들 가슴을 스치는
  바람의 눈물 속에 있다

  중략

  아
  가을은 모른다
  서로를 닮아 애잔한 우리
  스산한  몸짓으로  다가오는
  이 가을 풍경보다도 아름답다는 것을
  그래서 더 그립다는 것을  
                   __‘가을은 모른다’ 중에서  .

(b)억누를 수 없어
  밤을 쫓아 버려도
  가슴에 달이 차 오르나니
  곳곳에 숨어 깃든 모습
  긴 입맞춤으로 다가와
  애타게 그리워지고
  보고픈 마음  너무 커져
  가슴속에  긴 그림자를
  새겨놓는구나  
                   __‘가슴에 달이 져도’중에서  

 (c)밤새 추위에 떨며
    눈밭을 구르다가
    햇볕에 녹아 내린  설경을
    아쉬워하며 길을 가는 수도승처럼
    처연히 마음을 두되
    언제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는
    그런 사람  
                     __‘겨울 나그네’중에서

 이 세 편의 시는 모두 가을과 겨울을 소재로 한 시편들이다. 흔히 서정시가 가지는 시적 양식으로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동일성의 경지를 시의 근간으로 하고 있는 것인데, 김 시인의 시편에서는 이 동일성의 법칙을 소재적 의미로 펼쳐놓은 점이 독특하다.

 먼저 (a)를 보면 가을은 바람의 눈물 속에 존재하고 있다. 바람의 눈물은 지나간 것에 관한 바람의 서러움을 담고 있고, 이 서러움으로 해서 가을은 존재한다. 가을이라는 자연과 우리라는 인간 사이에 ‘서로 닮아’라는 공통성은 가을이라는 계절에서 느끼게 되는 심정적 세계가 우리라는 주체가 받아들이는 심정적 세계와 같은 정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을은 모른다’는 역설로 표현되고 있는 것은 가을과 우리가 하나가 되는 동일성보다는 가을이 주는 정서적 환기에 매달려 있는 우리를 상정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가을의 중심에 서기 보다는 겸손하게 비켜서 있고 싶어하는 시인의 자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비켜섬의 정신은 자연을 내안으로 끌어들이는 힘보다는 자연의 곁에서 자연이 남기고 가는 삶의 진실을 찾아내어 담으려는 의지가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b)에서도 가슴에 차오르는 달과 가슴에 지는 달을 대비하고 있다. 긴 입맞춤으로 엮어진  완숙했던 사랑의 기억은 가슴에 긴 그림자를 남기게 되고, 이 그림자는 달의 차오름과 기울음의 차이를 그림자의 크기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대비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움이라는 시인의 애달픔을 뜨는 달과 지는 달의 사이에서 스스로 얻어내는 변화라 할 것이다. 그러기에 ‘달이 차면’이 아니라 ‘가슴에 달이 차오르면’이라는 가상성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고 할 것이다.

 (c)에서는 겨울나그네의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 나그네는 수도승과 비유되어 있다. 겨울은 녹아버린 설경으로 나타나며, 이 설경을 아쉬워하면서 떠나는 수도승으로 나그네의 심정을 비유하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수도승처럼이라는 직유를 통해서 처연히 마음을 두지만 떠나야 하고 그러나 떠나야 할 방향도 목적도 모르며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이를 겨울나그네로 설정하고 있다. 이는 떠남에 있어서는 수도승과 공유하지만 미련으로 해서 지향을 얻지 못하는 이를 겨울나그네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에서 겨울은 공간적 보조물로 눈밭의 형상을 제공하지만, 이를 통해서 눈처럼 되고 있지 않은 주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위의 세 편의 시가 가진 공통점을 살펴보면 김 시인이 자연과의 거리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시적 기법에 있어서 자연이라는 공간은 삶의 환기라는 정서적 대응물로서 그 속에 살고 있는 인간에 관한 관심이 보다 치열하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사랑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 떠남의 슬픔도 녹여내는 힘을 가질 수 있고,  만남의 기쁨도 내면화할 수 있는 능력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김 시인이 감상적 서정주의자도 아니고, 예리한 모더니즘적 지적 상상의 세계에 몰두하고 있지 않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김 시인은 인간이 지닌 감성적 삶의 인식을 그대로 적실하게 드러내고자하는 충실한 인간애의 정신을 바탕으로 사랑이라는 인간다움의 근거를 어떻게 세상에 호소할 수 있는가를 예리하게 바라보는 시인이라고 할 것이다. 이는 그가 낭송의 영역에 오래 젖어오며 익힌 목소리의 설득력을 시라는 틀 안에서 적절하게 살리고자 하는 열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끝으로 *

 김 춘경 시인의 따뜻한 사랑법이 세상구원의 두레박이 되기를 바라며, 그의 시어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그리움이라는 마음의 조각들이 하늘에 아름다운 꽃구름을 그려줄 것을 기대한다.




    ♪..Any Dream Will Do - Phil Coul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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